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잠에서 깨었을 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소리, 새들이었다. 필시 두 마리 새가 나란히 앉아 밤새 꾼 꿈 이야기를 나누지 싶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새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여겨지질 않았다.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데도 오히려 정겹게 여겨졌고, 윤기 있는 소리에 듣는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일까? 단지 새소리이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새들이라고 무조건적인 아량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 이른 시간 끊임없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데에는 분명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소리를 들으며 세수를 할 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잠언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에 큰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잠언 27:14)는 구절이었다.
그동안 교회는 축복을 한다는 이유로 새벽에 큰소리를 냈던 것은 아닐까, 큰소리를 듣고 눈쌀을 찌푸리는 이웃을 향하여 지금 축복을 하는데 그게 무슨 가당치 않은 반응이냐며 오히려 불쾌하게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축복을 한다고 해도 이른 새벽의 큰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저주와 다를 것이 없는 데도 말이다.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마땅히 전하는 방법 또한 축복이어야 한다.
- 한희철 목사, <하루 한 생각>, 꽃자리, 504-505
*한희철 목사 초청 부흥회가 8월 25일(금)~27일(주일) 저희 시카고기쁨의교회에서 열립니다.
한희철 목사님은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강원도의 작은 마을 단강에서 15년간 목회했고, 단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보에 실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1988년 <크리스찬 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동화작가로 등단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민목회를 하다가, 지금은 한국에서 정릉감리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저서로,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걷다> <작은 교회 이야기>, <하루 한 생각> 등이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경험을 깊이 품었다가 정갈한 언어로 전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 어느새 마음이 맑아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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