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묵상 본문 - 렘 2:20-5:9
이스라엘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 호언장담한다. 그들은 이방 신을 섬기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용하다 소문난 곳은 찾아다니지 않을 장소가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을 누비며 우상을 섬긴다. 생각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방신을 ‘사랑해서’ 따라간다(2:25). 그들의 죄는 씻으려 해도 씻기지 않으며, 더는 지워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입술로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발걸음이 향하고 있는 그곳에 내가 사랑하는 우상이 있다.
2장 후반부는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논쟁적 언어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경고하기 위해 예언자를 보내셨지만, 그들은 예언자의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죽이기도 했다(30절). 그들의 옷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가득하다. 그러한 유다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유다는 여호와의 진노가 떠났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두지 않으실 것이다.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선민은 심판받지 않는다는 헛된 확신과 그들의 거짓 안전은 곧 무너져 내릴 것이다.
3장에 이르러 예언자는 부부관계를 비유로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던 여인과 같다. 돌아오려고 해도 돌아올 수 없는 때가 있는 법이다. 예언자는 패역한 이스라엘을 고발한다. 그리고 뒤이어 유다에 대해 선포하는데, 유다에 비교하면 이스라엘은 선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았음에도 반면교사로 삼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참 남편인 자신에게 돌아오라 하신다.
12-18절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목소리가 들리지만, 19절 이후로 다시 심판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신뢰할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편을 속이는 아내처럼 하나님을 속이는 자들이었다. 변명하지 말고 핑계대지 말고 돌아와야 한다. 모든 축복을 다 거두셔도 좋다고 말하며 돌아와야 진짜 회개다. ‘마음의 할례' 없이 종교적 의식만으로 얻을 수 있는 용서는 없다(4:4).
5절 이후로 이스라엘에 임박한 심판이 서술된다. 코앞에 닥친 심판 경고를 믿는 자들은 여호와를 견고한 성으로 삼아 피해야 한다. 파국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판 중에라도 구원을 얻으려면 베옷을 두르고 애곡하고 마음의 악을 씻어야 한다.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14절). 우리 마음 속에 너무 오래 머물고 있는 악한 생각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어서 씻어 버리고 주께 돌아서야 한다.
결국 예언자는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탄식한다. 백성을 향한 애끓는 마음에 아프고, 동시에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을 대변하며 또 아프다.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한 이들이 곧 우리는 아닐까?(4:22). 똑똑하고 지혜로운 듯 보이나 선을 행하는 일에는 어리석고 무지한 이들의 패망이 멀지 않았다. 두려워할 일이다.
북방으로부터 오는 적의 침입에 이스라엘은 도주하고, 심판은 이제 피할 수 없다. 누군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불러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며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용서하리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들은 한 사람도 찾지 못할 것이다. 이 시대에 그런 사람은 몇 이나 될까? 주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내가 되길 구하며 정의와 진리의 길을 걷는 한 주간 되자.
*참고: <묵상과 설교> 2023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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