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5:1-11:11
5장에서 보여주는 바, 이스라엘에 만연한 우상숭배를 주도한 자들은 놀랍게도 제사장과 왕족들이었다. 영적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그들이 권력과 이방의 우상 문화에 젖어 오히려 올무를 놓고 그물을 치는 사냥꾼들처럼 악의 선봉에 섰다(5:1).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울이라’ 힘주어 말씀하실 만큼 그들은 완악했고 무지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실 것이고, 그 어떤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6). 정조를 버리고 주를 떠나 사생아를 낳은 에브라임을 떠나신다(7). 하나님은 에브라임(이스라엘)에 대해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을 것이다(14).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그분은 제사를 원하지 않고 인애를 원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6:6).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구원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형식적인 회개에 머문다면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이다. 제사장마저 살인의 악행에 참여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죄는 깊고도 넓었다.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책임진 정치지도자들도 여호와를 모르고 범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7:1). 당파적 이기심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 나라가 무정부 상태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혼합’되어 버렸다(8). 결국 하나님이 그들을 구해주시려 해도 그분의 손길마저 거짓으로 뿌리친다(13).
그들은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미 선을 버렸다(8:2-3).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고 왕과 지도자를 세우고, 자신들을 위해 각종 우상을 만들어 섬겼다. 하나님은 참 신이 아닌 ‘사마리아의 송아지’를 부술 것이고, 이방과의 동맹의 허망함을 증명해 보이실 것이다.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은 이스라엘은 결국 그들이 나온 애굽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13-14).
9장에서 예언자는 타작마당에서 초막절을 즐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축제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들의 ‘새 포도주’가 떨어질 것이고, 이방 땅에서 더러운 것을 먹게 될 것이다(9:2-3). 제의적으로 불결한 이방 땅으로 쫓겨갈 것이기에 명절과 절기가 돌아와도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거나 축제의 모임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본래 광야에서 포도를 만난 것처럼,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를 본 것처럼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이제 범죄한 그들에게 다시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시고 열매가 없게 하실 것이다.
10장에서도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로 비유된다. 그러나 그들은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는 죄를 저질렀다(10:1). 풍요할수록 더욱 범죄한 것이다. 왕권의 타락도 이와 같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왕은 빈말과 거짓 맹세로 정의를 무너뜨렸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분명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12). 이제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은 모든 이들이 돌이켜 묵은 땅을 기경하고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둘 때이다(13).
11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렸을 때에 사랑하여 애굽에서 불러낸 아들로 묘사하신다(11:1). 그런데 그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안았음에도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섬겼다. 결국 에브라임(이스라엘)은 출애굽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간절하고 애틋하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하시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신다(8). 우리의 불순종과 범죄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감사의 고백과 순종의 결단이 있는 한 주간이 되도록 하자.
*참고: <묵상과 설교>,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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