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묵상본문 - 욥 9-14장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도 죄 때문이라는 매정한 빌닷의 말에 욥은 대답을 이어간다. 욥은 어떤 인생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음을 인정한다(9:2). 그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철저히 무능하고 무지할 뿐이다.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한다(11).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치셨다고 말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신즉' 함께 재판에 들어가 따질 수도 없다(32).
10장에 이르러 욥은 온 존재로 하나님께 질문을 던진다. 욥의 질문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왜 하나님은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멸하려 하시는가? 무덤에 보내려고 태에 생명을 만드시지는 않았을 텐데, 왜 나에게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하시는가?
11장에서 소발은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주장하는 욥을 향하여 책망하기 시작한다. 그는 욥에게 잊혀진 혹은 숨겨진 죄가 있다고 확신한다(11:6). 숨겨진 것은 욥의 죄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 역시 숨겨져 있기에 욥이 알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7). 따라서 욥의 유일한 희망은 그 손의 죄악과 불의를 버리는 것이라며 회개를 촉구한다. 소발은 하나님이 우리 이해 밖에 계신 분임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지는 못한다.
이런 친구들이 쏟아 놓는 나름의 ‘정답들'이 욥을 더욱 괴롭게 한다. 욥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자이지 채점자가 아니다. 12장에서 욥은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그 말들이 자신의 고난을 결코 설명해 낼 수 없다고 변론한다.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고,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다(12:4,6). 친구들이 말한 인과응보의 공식에 들어맞지 않는다. 의인도 어둠을 경험하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릴 때가 있다(25).
13장에서 욥은 친구들을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으로 규정하면서(4), 하나님과의 대면과 직접 변론을 희망한다(15). 설령 하나님이 자신을 죽이시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고하고 답을 듣고자 한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고자 함이다. 하여, 욥은 하나님께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해달라고 요청한다(23). 왜 자신을 ‘주의 원수로’ 여기시는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24). 경건한 전통으로 포장하지 않은 정직한 기도이다.
14장에서 욥은 철저하게 절망한다. “나무는 희망이 있"으나(7), 주님은 “사람의 희망을 끊으”신다(19). 욥은 결코 하나님을 이기지 못할 것이고, 마지막 희망마저 끊어버리는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모든 희망이 끊어진 자리에서야 욥은 마침내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너무 쉬운 희망에 기대어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욥의 정직한 기도를 조금 더 묵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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