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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eavenlyseed

시를 잊은 성도에게 - 해질녘의 노래 / 나희덕



아직은 문을 닫지 마셔요 햇빛이 반짝거려야 할 시간은 조금 더 남아있구요 새들에게는 못다 부른 노래가 있다고 해요 저 궁창에는 내려야 할 소나기가 떠다니고요 우리의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들이 저 멀리서 흘러오네요 저뭇한 창밖을 보셔요 혹시 당신의 젊은 날들이 어린 아들이 되어 돌아오고 있을지 모르잖아요 이즈막 지치고 힘든 날들이었지만 아직은 열려 있을 문을 향해서 힘껏 뛰어오고 있을 거에요 잠시만 더 기다리세요 이제 되었다고 한 후에도 열은 더 세어보세요 그리고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것들은 아무것도 내쫒지 마셔요 어둠의 한자락까지 따라 들어온다 해도 문틈에 낀 그 옷자락을 찢지는 마셔요


  • 나희덕, <해질녘의 노래>


희망이 외롭다, 고 말한 이가 김승희 시인이었던가요? 희망, 이라고 발음할 때 두근거림이 막 사그러져 가던 중이었는데, 정말 ‘햇빛이 반짝거려야 할 시간’이 조금 더 남아있는 걸까요? ‘새들에게는 못다 부른 노래’가 있고요? 아직 ‘우리의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들'이 남아 흘러오고 있다니, 정말 문을 조금 더 열어두어도 될까요?


제목이 ‘해질녘의 노래'라 하니, 찬송가 한 구절도 떠오르네요. “밤마다 문 열어 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어찌 쉽게 문을 닫겠어요. 어찌 맘 편하게 잠자리에 눕겠어요. “당신의 젊은 날들이 어린 아들이 되어 돌아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은 다음에도 ‘열은 더 세어’보아야지요. 


같은 마음으로 이번엔 기도를 올려요. 하나님 아부지, 아직은 문을 닫지 말아주셔요. 아직 더 반짝거려야 할 당신의 아들인데 암이라니요. 아직 부를 노래가 많은 당신의 딸인데 뇌동맥 파열이라니요. 더 기다려 주세요. 이제 되었다 한 후에 열은 더, 백은 더, 천은 더, 그것도 아주 천천히 세어주셔요.


그렇게 오래 교회 다녀도 마음 굳은 이들, 그렇게 기다려 주셨는데도 딴 길 가는 이들도, 이제 마 됐다 하지 마시고 조금 더 기다려주셔요. “제 발로 걸어온 것들은 아무것도 내쫒지 마셔요 어둠의 한자락까지 따라 들어온다 해도 문틈에 낀 그 옷자락을 찢지는 마셔요” 


아직은 문을 닫지 마셔요.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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