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작은 지팡이 하나 구해서
호그와트로 갈까 해요.
아 좋은 생각,
그것도 좋겠구나.
서울역 플랫폼 3과 1/4번 홈에서 옛 기차를 타렴.
가방에는 장난감과 잠옷과 시집을 담고
부지런한 부엉이와 안짱다리 고양이를 데리고
호그와트로 가거라 울지말고
가서 마법을 배워라.
나이가 좀 많겠다만 입학이야 안되겠니.
이곳은 모두 머글들
숨 막히는 이모와 이모부들
고시원 볕 안 드는 쪽방 뒤로
한 블록만 삐끗하면 달려드는 '죽음을 먹는 자들'
그래 가거라
인자한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과 주근깨 친구들
목이 덜렁거리지만 늘 유쾌한 유령들이 사는 곳
빗자루 타는 법과 초급 변신술을 떼고 나면, 배고프지 않는 약초 욕먹어도 슬퍼지지 않는 약초 분노에 눈 뒤집히지 않는 약초를 배우거라. 학자금 융자 없애는 마법 알바 시급 올리는 마법 오르는 보증금 막는 마법을 익히거라. 투명 망또도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그곳이라고 먹고살 걱정 없을까마는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저 흑마술을 잘 막아야 한다.
그때마다 선량한 사냥터지기 해그리드 아저씨를 생각하렴.
나도 따라가 약초밭 돌보는 심술 첨지라도 되고 싶구나
머리 셋 달린 괴물의 방을 지나
현자의 돌에 닿을 때까지,
부디 건투를 빈다
불사조기사단 만세!
김사인, <졸업>
하하. 충청도 출신 아니랄까봐 말 엄청 느리고 얼굴만 봐도 구수한 김사인 시인께서 이런 재미난 시를 쓰시다니. <해리포터> 책이나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뭔 소린가 싶겠네요. 머글, 덤블도어 교장, 해그리드 아저씨, 현자의 돌, 불사조기사단… 네? 호그와트가 어디 있는 학교냐고요?
이런 선생님이 계시면 얼마나 따뜻하고 든든할까요. 어딜 간다 해도, “아 좋은 생각, 그것도 좋겠구나. 그래 가거라" 믿어 주고 응원해 주는 선생님. 그러면서도 가방에 장난감과 잠옷과 함께 ‘시집'을 담으라 알려주시고, “욕먹어도 슬퍼지지 않는 약초 분노에 눈 뒤집히지 않는 약초를 배우거라” 하시며, 특히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저 흑마술을 잘 막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시 건투를 빌어주시는 선생님의 유쾌하고도 사려 깊은 졸업식 축사.
졸업하는 학생들, 축하해요. 새로운 출발 전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세요. 먼저 진리의 허리띠를 꽉 동여 매야 할 거예요. 안 그러면 시작도 하기 전에 바지가 흘러내릴 테니. 가슴에는 정의의 갑옷을 장착하고, 신발은 언제든 평화의 복음을 전하도록 가볍게 하세요. 아, 믿음의 방패 챙기는 걸 잊으면 안 돼요. 영혼을 잠식하는 불화살이 어디서 날라올 지 모르니까. 머리 크기에 맞게 구원의 투구를 잘 골라 쓰고, 무엇보다 성령의 검 즉 말씀의 칼로 무장하세요. 마지막으로, 이 모든 무기들은 기도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꼭 기억할 것! 건투를 빕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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