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상처를 덧씌우는 일이다
감당하지 못하는 뜨거움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한쪽을 허물고 다른 한쪽을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애써 보지 말아야 할 일이다
처절한 비명 참아야 할 일이다
그리하여 끊어진 한쪽을 찾아야 할 일이다
이질이며
동질이다
불이(不二)다
주강홍, <용접>
한인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 1위가 ‘은혜 받았다’라면 2위는 ‘상처받았다’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은혜도 잘 받으면서 상처도 잘 받는다니, 참 요상한 일입니다. 상처 받았다는 사람은 많으나 상처 주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 역시 신기하긴 마찬가지고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상처와 상처가 만나는 일입니다.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상처에 상처를 덧씌우는 일’이겠지요. 서로 다른 존재가 연결되는 그 ‘용접’의 순간에 강렬한 불꽃이 튀기 시작하고 우리는 ‘감당하지 못하는 뜨거움’을 견뎌야 합니다. ‘한쪽을 허물고 다른 한쪽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울까요. 고개 돌리고 싶을 만큼 ‘처절한 비명’을 참아야 마침내 용접이 되고 둘은 하나(不二)가 됩니다.
그러고 보니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는 말씀 너머에 용접의 파열음이 들리고 불꽃이 보이네요. 그 뜨거움을 견디고 비명을 참아 비로소 ‘끊어진 한쪽’을 찾아 내 한쪽이 되는 일입니다. 부부 간에도 그럴진대, 찢어진 세상을 붙이는 일은 오죽할까요. 예수께서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엡2:14). 십자가라는 용접이 있던 날, 하늘도 고개를 돌릴 만큼의 고통을 지나 마침내 이질이며 동질인 불이(不二)의 세상이 열립니다.
상처없이 만들어지는 한 몸은 없습니다. 용접 잘 하는 교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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