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빌어먹을
새벽부터 가늘게 뜬 눈으로
고운 햇살을 빌어오고
어제는 밤늦도록 톡톡
머리맡에 떨어지는 위로를
다 받아 발끝까지 데웠지
한때는 큰맘 먹고
빌어먹지 않겠다고
이 악물고 뛰었고
이러저리 힘차게 펄럭이다가
손에 쥔 것은 지나가는 바람뿐
빌어먹을 년
엄마의 엄마가 말했지
평생 벌어먹는 엄마의 발꿈치는 돌이 되고
숨죽은 버선코는 날마다 꿀럭꿀럭
네까짓 것이 무슨 일을 하겠니
한껏 빌어먹는 것이 소명이지
빌어먹는 년
욕을 넘어선 축복
빌어먹는 이야기
하늘 향해 빈손 드는
대책 없는 사람 되라는
할머니 예언자의 백번 들어도 좋은 욕
김주련, <예언자>
딸을 향해 ‘빌어먹을 년’이라 욕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자신도 여성이면서 딸을 차별하고 구박하고 ‘네까짓 것이 무슨 일을 하겠니’ 무시하던 수많은 어머니들… 빌어먹을 년 소리에 한 맺혀 ‘난 빌어먹지 않고 벌어먹을 거야’ 이 악물고 뛰었건만, 결국 “손에 쥔 것은 지나가는 바람뿐.”
멈춰서 돌아보니 웬걸, 한껏 빌어먹고 살았네요. 하나님 사랑 빌어먹고, 가족의 사랑 빌어먹고, 이웃의 사랑 빌어먹으며 은총으로 살았네요. 아하, 이제 보니 할머니는 예언자! 벌어먹지 말고 하늘 향해 빈손 들고 살라는 축복이었군요. 모든 대책 다 세우며 내 힘으로 살려고 아등바등 하다가, 하늘의 힘 의지하는 법 까맣게 잊어버린 우리를 향한 할머니 예언자의 “욕을 넘어선 축복.”
성찬을 받는 날. 한 주간 벌어먹으려고 애쓰던 손을 겸손히 벌려 거저 주시는 빵과 잔을 받습니다. 내내 괴롭히던 문제들, 풀어갈 대책은 없지만 하늘 향해 빈손을 내밉니다. 빌어먹는 은총을 받아 먹고 마십니다. 그리고 다시 빕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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