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지난 주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시입니다. 소설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실린 첫 시이지요. 시인은 막 지은 밥에서 피어 오르는 김을 보다가 멈칫 합니다. 깨달음의 순간이자, 시가 찾아오는 경험이었겠지요. 영원히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 무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빈 자리에 앉아 시인은 밥을 먹습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듯, 김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밥을 입 안에 넣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그 날에도 밥을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만져지지 않는 그 부재의 자리에서 밥을 입 속에 넣었습니다. 김훈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야말로 대책없고 “진저리나는 밥”이었습니다. 무언가 누군가 영원히 사라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밥을 먹고 또 하루를 살아갑니다. 진저리나는 일상이자, 정성스럽게 살아내야 할 일상입니다.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자각이 내 앞에 있는 것들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집니다. 김처럼 사라져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끌어안고, 한껏 살아내려는 몸짓으로 밥숟갈을 뜹니다. 그것이 매일 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 아닐까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밥’을 주시옵고…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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