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김경미, <식사법>
먹는 얘기인가 싶어 읽다 보니 사는 얘기네요. 식사법이라 했지만 사는 법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사실 먹는 것과 사는 건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지요. 오죽했으면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까지 있을까요. 그러니 먹는 행위 속에서 삶을 발견하는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싶습니다.
중간에 자꾸 뚜껑 열어 비릿한 콩나물처럼 설익은 말과 조급한 행동을 조심할 것. 작고 하찮은 것들에 담긴 하늘 고요를 한 톨도 흘리지 말고 소중히 여길 것, 맛없다고 떼어낸 식빵 가장자리처럼(아, 찔려라) 삶의 힘든 구석도 묵묵히 잘 씹어 먹어 내 것으로 삼을 것.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이빨 부서지는 소리를 내고 멸치똥처럼 쓸 데 없어 보이는 날들의 연속이어도 유순한 눈빛은 잃어버리지 말고 살 것.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좌절에 흐트러진 몸과 마음, 가지런히 놓인 한 벌의 수저처럼 잘 정돈해 볼 것.
때론 잘 안 넘어가는 밥이 있지요. 목에 돌이 걸린 듯 삼키기 어려운 삶도 있고요. 그래도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겨보자고 토닥여 봅니다. 그러고 보면 “받아 먹으라” 하시며 건네신 성찬은 그분의 삶을 잘 받아 먹으라는 초청인가 봅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의 몸이 되어 그의 삶을 이 땅에서 이어받아 살아가라는 부르심 말입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공유하는 특별한 식탁, 전혀 다른 삶, 잘 넘겨 보실까요?
(그나저나 식탁에 이 시를 붙여 놓고 식사 때마다 보면 좋겠네요. 네? 드라마 보면서 먹어야 한다고요?)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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