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부부>
결혼식 주례할 때 읽어주곤 했던 시입니다. 부부가 무엇인지 알려주는데 이만한 글이 있나 싶습니다. 긴 상을 함께 든 채로, 한 사람은 앞으로 걷고 한 사람은 뒤로 걸으며 서로를 읽어야 합니다. 걸음의 속도와 보폭을 맞추어야 하고, 높이까지 조절해야 합니다. 먼저 다 왔다고 상을 탕 내려놓았다가는 그날 밥은 다 먹었다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왜 어머니보다 저만치 앞서 걸으셨을까요. “같이 좀 가요” 불러도 대답도 않으시고, 나란히 걸으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성큼성큼 앞서 가셨지요. 하긴, 밥상을 드는 것도 언제나 어머니 몫이었으니 걸음을 맞춰 걷는 법을 배웠을리가 없지요. 서로의 마음과 몸짓을 꼼꼼한 눈으로 읽으며 함께 걷는 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집에서부터 배웠어야 하는 일입니다.
어디 부부 뿐일까요. 교회에서 읽어야 할 것은 성경만이 아닙니다. 딸에게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을 잘 읽을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한 ‘식구’라면, 긴 밥상을 같이 드는 마음으로, 서로의 몸짓과 눈빛을 살피며 발맞추어 걸어가야겠지요.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되겠고, 당신 혼자 들고 가라 하며 뒤로 빠져도 곤란하겠지요. 돌아봄의 눈길로, 돌봄의 손길로, 우리 함께 걸어가 보실까요? 한 발 또 한 발, 한 발 또 한 발.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시133:1)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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