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봬요 그래요 내일 봬요를 처리하지 못해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내일 뵈요 라고 썼다가 그건 또 영 내키지가 않아 그럼 내일 뵐게요 라고 적어보니 다소 건방진 듯해서 이내 그때 뵙겠습니다 라고 고치자 너무 거리를 두는 것 같고 내일 봐요에 느낌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두 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갈팡질팡하는데 가벼운 인사를 가벼운 사람으로 당신이 나를 오해할까 잠시 망설이다 숨을 고르고 다시 봬요로 돌아온다 그런데 봬요를 못 알아보고 세상에 이렇게 한글을 이상하게 조합하는 사람도 있네 라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봬요는 청유형 존대어라 어색한 걸 모르냐고 되물을까 봐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져 내일 봅시다 라고 따따따 찍어보니 참나 이건 정말로 더 아니다 싶어 결국 내일이 기다려져요 라고 보내버리고는 손목에 힘이 풀려 폰을 툭 떨어뜨렸다
숙희, <봬요>
요즘 애들은 문자 보낼 때 마침표도 안 찍고, 분명 의문문인데 물음표도 안 하고, 물결(~) 표시나 ^^를 붙이면 나이 든 증거라고 여긴다던데, 마침표는 물론이고 쉼표와 느낌표 확실하게 붙이고 물결 표시는 예의상 달아주는 나는 뭔가 싶습니다. 특히 맞춤법이나 띄워쓰기 잘 하려고 문자 하나 보내려면 시간 꽤나 걸리는 입장에서 이 시를 읽으며 얼마나 많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는지…^^
분명 ‘봬요’가 맞는 말인데, 막상 쓰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뵐게요’ ‘뵙겠습니다’ ‘봐요’ ‘봅시다’를 썼다 지웠다 반복을 합니다. 아무래도 ‘뵈어요’를 주로 쓰는데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쓰자니 어색하거나 거리감이 느껴지고, ‘만나요’로 하자니 가벼운 느낌이어서 차라리 영어로 하는 게 낫겠다 싶어 ‘See you~’라고 해 놓고, 아 이런 또 물결 표시를…ㅠ
맞춤법과 띄워쓰기야 잘 하면 좋겠지만, 한 단어 한 문장 써 놓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해야 하는 관계라면 그리 편한 사이는 아니겠지요.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유명한 시에서 그랬잖아요.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봬요’를 ‘뵈요’라고 써도 흉보지 않을 거라 믿고, 내 글을 그가 어떻게 읽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한 말을 오해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벗을 우리는 모두 그리워합니다. 저 말에 숨은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없는 투명한 관계를 꿈꿉니다. 상대의 말에 숨은 의도를 의심하기보다 숨은 뜻을 헤아릴 줄 아는 공동체이면 좋겠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 10:12).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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