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 남녀의 뒤로 가다가
찰칵, 내 뒷모습이 찍혔네
순간 알았네
저이들 뒤에 선 홰나무나
능소화처럼
나도
배경이 되었음을
배경은
나를 최대한 평평히 말아넣는 일
나를 희미하게 탐색하는 일
저이들이 인화된 사진을 보며
나를 알아채지 못하게
나는 바위처럼 납작하게
나는 나무처럼 건들거리며
나는 구름처럼 둥싯거리며
나는 가장 나중에야 들통 나는 사람
그러나
언젠가 너로부터
배경이 되었던 날처럼
너무 갑작스럽지는 않게
너무 쓸쓸하지는 않게
저이들이 나와 홰나무와 능소화를 훌훌 접어서
손바닥만한 디카 주머니에 넣고
깨꽃처럼 웃으며 사라진다
문성해, <배경이 되는 일>
누군가의 배경이 된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지요. 사진찍는 남녀 뒤를 눈치없이 지나가다가 찰칵 찍힐 수도 있고, 소개팅을 나갔는데(아, 너무 옛날 얘긴가요?)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의 배경이 될 수도 있을 테고, 직장에서 상사의 관심과 칭찬이 내 옆의 동료에게 쏠리며 나는 ‘배경 처리’ 되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겠다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배경없는 사진은 얼마나 밋밋할까요.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은 또 얼마나 끔찍한가요. 그러고 보니 안도현 시인의 말이 맞네요.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일이다/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배경은 튀면 안 됩니다. 나를 “최대한 평평히 말아” 넣어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나는 가장 나중에야 들통 나는 사람”이라니, 그만 목이 콱 막힙니다. 너무 쉽게 들통 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숨고 싶을 때조차 앞에 서야 했고, 어느새 배경이 되는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아, 세례 요한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요. 기꺼이 그분의 풍경이 되어 사는 기쁨을 사는 내내 오롯이 누렸으니 말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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