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무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重力)마저 놓치지 않으려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가는 봄.
- 황동규, <더딘 슬픔>
불을 꺼도 빛은 희미하게 남아 있지요. 눈이 그쳐도 길모퉁이 눈은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남아 있고요. 심지어 봄이 와도 지난 겨울의 중력을 놓치 않으려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가 쓸쓸하게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잊으라 그리 쉽게 말하는 걸까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맞는 말이 왜 그리 서운하던지요. 내겐 아직 이별할 시간이 더 필요한데, 형광등 빛의 여운이 사라지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내 곁에 있던 이들을 기억하는 여운마저 끊어내라는 세상은 얼마나 냉정한가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니 반갑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감염되어 떠나간 사람들을 너무 쉽게 잊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더딘 슬픔과 애도가 조금은 더 필요한 건 아닐까요. 팬데믹으로 얻은 깨달음을 내면화할 여운의 시간도요. 더디게 가는 봄은 살아있는 자의 예의일 테니까요.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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