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어둠 속을 더 잘 보려고 눈을 감는다
눈은 얼마나 많이 보아버렸는가
사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다 눈을 감는다
사람인 것에 대하여 말하려다 눈을 감는다
눈은 얼마나 많이 잘못 보아버렸는가
천양희, <눈>
요즘 눈이 침침해서 고생을 좀 합니다. 노안이 온 지는 꽤 됐지만, 요즘은 아예 책 보기가 힘들 정도네요. 안약도 넣고, 눈 마사지도 하고, 20-20-20 규칙(20분마다 20초씩 20피트 멀리 바라보기)도 지켜보려 애씁니다. 롱보드 타며 젊은 척 했는데, 실은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인가 봅니다. (이런, 그새 20분이 지났다고 알람이 울리네요. 20초 뒤에 오겠습니다.)
“눈은 얼마나 많이 보아버렸는가” 시인의 말에 눈을 질끈 감습니다. 책과 컴퓨터를 너무 많이 본 탓도 있겠지요. 그런데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않고,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너무 많이 보아버렸던 건 아닐까요? 큰 것을 보다 작은 것을 놓쳤고, 높은 것을 보다 낮은 것을 지나쳤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김시인이 수강생들에게 지금까지 사과를 몇 번 봤느냐고 묻습니다. 천 번, 만 번, 백만 번? 대답하는 학생들에게 김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틀렸어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예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것이에요.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사과의 그림자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뒤집어도 보고, 한입 베어 물어도 보고,…”
우리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본 적이 있을까요?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믿어 본 적은 있는 걸까요? “눈은 얼마나 많이 잘못 보아버렸는가" 잘못 보니 잘못 믿습니다. 제대로 안 보니 제대로 믿지 못합니다. 노안은 믿음의 세계에서도 옵니다. 눈 운동이 필요합니다. 잠시 눈을 감아 보실까요?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b).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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