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윤석중, <넉 점 반>
1940년대였으니 집에 시계 있는 집이 별로 없었겠지요. 지금 몇 시인지 알아보고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듣고, 아이는 “넉 점 반”이라는 영감님의 답을 되뇌이며 돌아옵니다. 그러다 물 먹는 닭 구경 하고, 개미 떼도 한참을 구경하고,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면서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계속 “넉 점 반 넉 점 반"을 외웁니다. 분꽃 따서 입에 물고 “니나니 나니나” 노래를 하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돌아와 해맑은 얼굴로 당당하게 말합니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세상에, 어쩌면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윤석중 선생은 겨우 29살의 나이에 대체 어떤 세계를 보았던 것일까요? 적어도, 시간에 쫓기며 한눈 팔지 않고 달려야 남을 이겨 끝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아니었겠지요. 닭과 개미와 잠자리의 움직임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분꽃 입에 물고 노래하며 ‘넉 점 반’의 순간을 오롯이 누리는, 그런 이들의 세상이었겠지요.
365일이 어느새 지나가버렸네요. 주어진 일 하다가 ‘넉 점 반'의 때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요? 새해에는 가끔 한눈 팔기도 하고, 소소한 일에 마음도 빼앗겨 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넉 점 반'을 한껏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도 애쓰셨습니다. 넉넉한 새해 맞으시길 빕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1-13)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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