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죽어야 데는데
십게 죽지도 아나고 참 죽겐네
몸이 아푸마
빨리 주거여지 시푸고
재매끼 놀 때는
좀 사라야지 시푸다
내 마음이 이래
와따가따 한다
- 박금분 <내 마음>
다큐멘타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주연 배우 박금분 할머니께서 지은 시입니다. 이 영화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에 사시는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게 되는 과정을 실제로 따라가며 담은 다큐멘타리입니다. 박금분 할머니의 시를 읽으니, 글은 몰랐어도 이 분들 안에 시가 있었구나 싶습니다. ‘와따가따' 하는 마음의 양면성과 삶의 애매모함을 이토록 잘 표현한 시가 또 있을까요?
철학자 주희는 “시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은 것들이 소리와 가락을 이룬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과 내 인생을 그 시가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새벽이나 해 질 녘, 저 멀리 언덕 너머로 오는 실루엣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애매한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지요? 그 모호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이에게 우리는 어느 쪽이냐고 다그치면서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요?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될 일인데 말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막9:24). 자식을 고쳐달라는 이 아버지는 믿음과 믿음없음 사이에 놓여 있었습니다. 둘 사이에 낀 그의 불완전한 신앙에 대해 주님은 다그치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없음을 도와주십니다. ‘이래 와따가따' 하는 내 마음 알아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누군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렇게 좀 넉넉하면 좋겠습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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