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 옆에 있다.
흐린 아침 미사 중에 들은 한 구절이
창백한 나라에서 내리는 성긴 눈발이 되어
옷깃 여미고 주위를 살피게 하네요.
누구요? 안 보이는 것은 아직도 안 보이고
잎과 열매 다 잃은 백양나무 하나가 울고 있습니다.
먼지 묻은 하느님의 사진을 닦고 있는 나무,
그래도 눈물은 영혼의 부동액이라구요?
눈물이 없으면 우리는 다 얼어버린다구요?
내가 몰입했던 단단한 뼈의 성문 열리고
울음 그치고 일어서는 내 백양나무 하나.
- 마종기, <나무가 있는 풍경>
마종기 시인은 우리와 같은 이민자여서 그런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시인입니다. 가발 매장을 하던 동생이 권총 강도에 의해 사망한 일도 남의 일 같지 않고요. 범인의 사형 집행을 중지해달라며 마종기 시인과 가족들이 낸 탄원서가 한인사회에 큰 울림이 되기도 했었지요. “인간의 생명을 사람이 결정할 수 없다”는 그의 신앙고백은, 어쩌면 이 시의 눈물을 통과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 옆에 있다”는 말씀을 들은 시인이 옷깃을 여미고 주위를 둘러 봅니다. 시인에게 보이는 건 오직 잎과 열매 다 잃은 채 울고 있는 백양나무 한 그루. 그런데 그 나무가 눈물로 먼지 묻은 하나님의 사진을 닦고 있습니다. (문득,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던 여인이 떠오릅니다)
그 순간 또 한 말씀을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눈물은 영혼의 부동액이라고요?/ 눈물이 없으면 우리는 다 얼어버린다고요?” 되묻는 시인은 그를 가두었던 절망의 ‘단단한 뼈의 성문’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마침내 ‘울음 그치고 일어서는 내 백양나무 하나’는 눈물을 통해 문 밖의 세계를 본 시인 그 자신이겠지요.
‘눈물은 영혼의 부동액’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진리인가요. ‘우는 자가 복이 있다’ 하신 예수님도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습니다. 가끔 그런 시가 있지요. 읽고 나면 손을 모으게 되는. 영혼이 얼지 않도록 부동액 가득 채우고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우는 자와 함께 우는 뜨거운 영혼의 사람이 되기를, 눈물 머금고 손을 모읍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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