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그를 깁다 / 김희라
- heavenlyseed
- 3월 29일
- 2분 분량
남편의 방한복을 손질한다.
지퍼를 올리려니 꼼짝 않는다.
그가 걸어온 길이
지진으로 찢어진 도로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봉합되지 않는다.
녹슬어 이가 빠진 지퍼
혹한의 거리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의 어금니가 뽑히는 것도
참아낸 것일까.
일거리를 파헤치던 소맷귀는
낡아 헤어져 탄력을 잃고
말없이 삼키고 만 사연들이
실밥마저 닳아 터진 자리에서
삐져나오다 말고 주춤거린다.
살며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싸늘한 동전 한 닢
한 푼이라도 아껴 쓰려던 그가
자린고비로 살아온 삶의 비늘이다.
작은 일에 투정하며 쐐기를 박았던 말들
묵묵히 받아넘기며 살아온 그 이
터진 옷깃을 깁다 말고
가벼워진 방한복을 와락 안아본다.
- 김희라, <그를 깁다>
오래 전 우연히 발견하고 저장해 놓은 시입니다. 2011년 동포문학상 시 부문 가작인데, 캐나다에 사는 어느 이민자의 시라는 말에 이내 코끝이 시려 왔었지요. “지진으로 찢어진 도로”처럼 갈라진 남편 옷의 지퍼에서 시인은 갈라져 봉합되지 않는 그의 인생 길을 떠올립니다. 이가 빠진 지퍼에서 참다 참다 뽑혀 버린 남편의 어금니가 보이고, 낡고 닳은 소맷귀에서 그의 말 못할 사연들이 보입니다. 그러다 호주머니에서 그의 짜디 짠 “삶의 비늘”까지 발견하고 말았으니, 와락 옷을 끌어안고 울지 않을 재간이 없었겠지요. 깁고 싶은 건 남편의 옷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고 삶이고 그 자신 아니었을까요?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시60:2). 갈라지고 찢어져 그 틈을 기워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남모를 상처로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 부둥켜 안고 우는 이들, 가족 간의 갈등으로 봉합되기 힘든 지경에 이르는 이들, 지진으로 찢겨진 땅처럼 증오와 배제로 갈라진 이 사회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신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와락 안으시고 싸매시고 기워주시길 비는 간곡한 기도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호6:1).
<걷기의 인문학>을 쓴 리베카 솔닛은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이라고 했지요.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요단 동서편과 예루살렘을 내내 걸으셨던 예수님은 혹시 찢어진 곳을 꿰매고 계셨던 건 아닐까요? 이 시대 주님의 바느질이 필요한 틈은 어디일까요? 갈라진 곳마다 십자가로 꿰매시는 주님의 손길을 오늘도 손모아 빕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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