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산에 가면
밑둥만 남은 채 눈을 맞는 나무들이 있다
쌓인 눈을 손으로 헤쳐내면
드러난 나이테가 나를 보고 있다
들여다볼수록
비범하게 생긴 넓은 이마와
도타운 귀, 그 위로 오르는 외길이 보인다
그새 쌓인 눈을 다시 쓸어내리면
거무스레 습기에 지친 손등이 있고
신열에 들뜬 입술 위로 물처럼 맑아진 눈물이 흐른다
잘릴 때 쏟은 톱밥가루는 지금도
마른 껍질 속에 흩어져
해산한 여인의 땀으로 맺혀 빛나고,
그 옆으로는 아직 나이테도 생기지 않은
꺾으면 문드러질 만큼 어린 것들이
뿌리박힌 곳에서 자라고 있다
도끼로 찍히고
베이고 눈 속에 묻히더라도
고요히 남아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
눈을 맞으며 산에 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라보는 나이테가 있다
나희덕, <겨울산에 가면>
창립기념주일을 앞두고 교회 11년의 발자취를 살피며 연혁을 정리했습니다. 2014년 2월 2일부터 2024년 12월 29일까지, 주보와 여러 자료를 들춰보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살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첫날 교우들은 어떤 마음으로 예배드렸을까, 설교하는 김 목사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금의 우리 교회는 그날의 간절했던 기도대로 되었을까.
마치 나이테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눈을 맞으며 산에 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라보는 나이테” 온갖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장구의 세월을 견디다 이제 밑동만 남은 나무는 그 옆에 아직 나이테도 생기지 않은 어린 것들의 터전이 되어 주었겠지요. 이제 겨우 11살이 된 우리 교회는 어떤 모양의 나이테를 만들어가게 될까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고민이 깊은 날들을 보내다 이 구절에 기도 손을 모읍니다. “도끼로 찍히고/ 베이고 눈 속에 묻히더라도/ 고요히 남아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런 교회이면 좋겠습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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