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의 고향은 먼 오스트리아
이십대 곱던 시절 소록도에 와서
칠순 할머니 되어 고향에 돌아갔다네
올 때 들고 온 건 가방 하나
갈 때 들고 간 건 그 가방 하나
자신이 한 일 새들에게도 나무에게도
왼손에게도 말하지 않고
더 늙으면 짐이 될까봐
환송하는 일로 성가시게 할까봐
우유 사러 가듯 떠나 고향에 돌아간 사람들
엄살과 과시 제하면 쥐뿔도 이문 없는 세상에
하루에도 몇 번 짐을 싸도 오리무중인 길에
한번 짐을 싸서 일생의 일을 마친 사람들
가서 한 삼년
머슴이나 살아주고 싶은 사람들
백무산, <가방 하나>
오래 전, 두 분에 관한 기사를 읽고 마음이 먹먹하여 아무 말도 못한 채 한참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고향인 오스트리아를 떠나 한국전쟁 이후 아직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땅에, 그것도 ‘저주받은 땅'이라고 불리던 소록도에 찾아와 한센병 환자들과 더불어 살기 시작한 그들의 나이가 불과 이십 대 초반.
의사도 접촉을 꺼리던 환자들의 몸을 맨손으로 만지고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았고, 본국에서 보내온 후원금도 환자들을 위해 쓰고 본인들은 죽은 환자들의 옷을 수선해서 입으며 살다가 어느새 칠순을 넘긴 두 ‘할매'는 2005년 11월21일 아침 소록도를 떠나 고국으로 조용히 돌아가셨지요. 자신들이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올 때 들고 온 그 가방 하나 들고서. 편지 한 장 달랑 남긴 채.
그분들에게 “가서 한 삼년/ 머슴이나 살아주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가방 하나”를 떠올리며, “엄살과 과시 제하면" 아무 것도 없는 나를 부끄러워 합니다. “한번 짐을 싸서 일생의 일을 마친" 두 분을 보며, 봉사의 일 하나 시작해 놓고 “하루에도 몇 번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가벼움을 민망해 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입니다. 제자라는 말을 풀어 쓴다면 이것 아닐까요? 가방 하나 싸서 일생의 일을 마치는 사람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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