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墨畵(묵화)>
이사 때문인지 몸에 무리가 있었나 봅니다. 허리가 아파서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엎드려서 ‘얼마나 아프게 주무르려나' 숨죽여 기다리는데, 뜻밖에도 허리에 따뜻한 손이 얹히고 잠시 적막이 흘렀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온해졌습니다. 그게 기도였다는 걸 치료 후 들었지만, 말씀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통증과 짜증과 분노로 가득한 환자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으면 금새 조용해지고 온순해진다는 어느 의사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이 시가 담고 있는 그 적막함과 먹먹함을 대할 때 저는 늘 숨을 죽입니다. 墨畵(묵화)라는 시 제목처럼 아주 천천히 먹이 퍼지고 묵향이 번져옵니다. 그 길고 고단한 ‘이 하루'를 함께 지난 할머니와 소의 말없는 대화가 때론 평온하게, 때론 성스럽게 다가옵니다.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하니 그 소에 얹힌 할머니 손도 멀쩡하지는 않았겠지요. ‘할머니가 손을 얹었다'고 하지 않고,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고 말함으로 소가 받은 위로가 전해져 옵니다. 묵화는 그 목덜미에 얹은 위로를 묵묵히 그려냅니다.
예수님의 치유 장면을 읽을 때마다 그분의 말보다 그분의 손에 주목합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충분히 고치실 수 있지만 굳이 손을 얹으십니다. 아무도 손대기 싫어하는 그의 몸에 손을 깊게 얹으십니다. 힘들었겠다고, 외로웠겠다고, 나도 안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말하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아, 나는 언제쯤 이런 몸의 말을 할 수 있게 될까요.
(손태환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