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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육순의 문턱에서 / 문종수

작성자 사진: heavenlyseedheavenlyseed


아주 낯선

처음 찾아온 손님같이

육순이 문지방을 넘어섭니다

어쩐다

허나 얼른 마음 고쳐먹고

중얼거리듯 말합니다

“어서 오시게나

오실 줄 알았네”


  • 문종수, <육순의 문턱에서>


나이에 관한 시가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목놓아 부르며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점점 멀어져 가는 20대 청춘을 아쉬워했고, 최승자 시인의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는 문장에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었지요. 한없이 우울했던 마흔 생일 날에는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라던 이문재 시인의 <소금창고>를 열 번 쯤 읽었고요. 


오십의 감정은 ‘우울’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싶었는데, 시인들이 놓쳤을 리가 없지요. “애들은 커서 다 떠난 텅 빈집엔/ 살아온 생이 지겹지 않아서 문득 지겨운/ 그런 적막이/ 길바닥처럼 쌓여 무장무장 썩고 있다”(곽진구, <우울, 그 오십 이후>). 아, 황인숙 시인의 <송년회>도 빼 놓을 수 없지요.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지!"/ 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깜깜 웃었다.”


뭘 입어도 예쁜 나이가 ‘환갑’이라 말씀하시지만, 누군가에겐 아주 낯선 손님같이 문지방을 넘어서 오지요. 얼마 전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이 올해 환갑이라 하셔서 생각난 시입니다. 육순은 (환갑과는 다르지만) 흔히 ‘귀가 순해진다’하여 이순耳順이라고도 하지요. 불혹 나이에 매일 흔들렸고, 지천명 나이에 하늘 뜻을 여전히 찾고 있기에 이순도 믿지는 못하겠지만, 간절하긴 합니다. 순한 귀로 사는 삶. 


나이들어 가는 걸 우울해하고, 심지어 서러워하는 분들을 봅니다. 어느 날 문지방을 넘어서는 그 낯선 손님이 많이 당황스러운가 봅니다. 어쩔 수 없다면 “얼른 마음 고쳐 먹고” 인사하면 어떨까요? “어서 오시게나 오실 줄 알았다네.”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그러셨잖아요. 팔을 벌리고 받아들이며 살라고.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요21:18).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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