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꽃 숨을 / 홍순관
꽃은 꽃 숨을 쉬고
나무는 나무 숨을 쉽니다.
아침은 아침 숨을 쉬고
저녁은 저녁 숨을 쉽니다.
하나님은 침묵의 숨을 쉬고
바람은 지나가는 숨을 쉽니다.
나는 내 숨을 쉽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창조주의 기운이 물 위에 감돌 때인데, 아마 하나님은 물 위를 서성이시며 여러 표정으로 얼굴도 비추어 보고 재미난 구상을 하셨을 테지요. 세상을 만들 궁리 말입니다. 태초와 영원을 단번에 잇는 스케일이 아니라면 이 장면을 상상하긴 어려울 테지요. ‘신나는 숨'이 시작됩니다.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라는 외로운 숨으로 창조는 시작됩니다. 그 빛은 어둠을 뚫고 나왔지만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을 땐 정작 혼자였습니다. 그 외로움이 어두운 세상을 비춥니다. 땅은 땅의 숨을, 물은 물의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아침은 시작의 숨을, 저녁은 고요한 쉼의 숨을 쉽니다. 제 숨을 쉰다는 것은 어쩌면 외로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 숨을 쉬려면 주어진 길을 한눈팔지 않고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분의 생기를 받고 비로소 숨을 쉬게 되었지요. 산 것은 모두 제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제 숨'을 쉬고 사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들은 창공에 길을 열고, 냇물은 물고기에게 길을 내어주며, 들판은 낮은 풀과 작은 꽃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러면 들꽃은 들판을 숨 쉬게 하고 나무는 산을 숨 쉬게 합니다. 이렇게 작고 낮은 숨들이 세상 전체를 숨 쉬게 하지요. 내 숨을 쉬어야 다른 생명도 제 숨을 쉬게 됩니다. 내 길을 걷는 것이 남의 길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창조의 세상은 저마다 주어진 ‘숨'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홍순관, “꽃은 꽃 숨을” “내 길을 걷는 것이” [태초에 여백이 있었다], 새물결플러스, p.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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